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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항일이야기 - 국립 신암선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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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박철희
PCH@tbc.co.kr
2019년 05월 24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우리 동네 항일이야기> 순섭니다.

이번에는 전국 유일의 독립운동가 전용 묘역,
대구 동구의 국립 신암선열공원을
박철희 기자가 소개합니다.

금호강을 낀 양지바른 언덕,

앳된 얼굴의 한 젊은이가 잠들어 있습니다.

1919년 대구 3.8 만세운동의 첫 희생자,
24살 김용해 지삽니다.

(cg시작)100년 전 서문시장의 만세행렬이 동성로에 이르렀을 즈음, 시위를 이끌던 아버지가 일경에 봉변을 당하자 김 지사는 맨몸으로 맞섰습니다.

하지만 무참히 폭행당해 실신 상태에서 체포됐고 결국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했습니다.(cg끝)

권영배 /문학박사(한국근현대사)
"석방된 이틀만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런 상황을 아버지는 사실 감옥에 있으면서 몰랐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대구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김태련 지사,

2년6개월 징역을 마친 뒤 감옥에서 모은 노임으로 외동아들 무덤에 작은 비를 세웠습니다.

비는 새로 섰지만 절절한 부정을 담은 비문은
아직 그대롭니다.

(cg) 己未三一 義血淋? 乃爺苦賃 立石朝陽
내레이션 "기미년 3.1 만세 때 의로운 피가 질퍽했나니 아비의 고통에 찬 품삯으로 아침 햇살 아래 이 비를 세우노라"

권영배 /문학박사(한국 근현대사)
"(애끓는 부정 이외에도) 일제의 그 포악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마음이 (비문) 행간에 숨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 아들 무덤 바로 곁에서
그를 지키고 있습니다.

스탠딩)김태련과 김용해 부자가 잠든 이 곳은
전국 유일의 독립유공자 전용묘역인 국립신암선열공원입니다.

의병 투쟁으로 징역을 살고 출옥하자마자 또다시 의병을 일으킨 불굴의 의병장 임용상 지사,

관공서 파괴와 요인 암살을 시도했던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신재모,방한상,우해룡,정명준 지사,

그리고 광복군 11분과 만세운동 9분, 그리고 학생운동을 한 분들까지...

모두 15개 항일운동 계열에
52위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영면해 있습니다.

대명동 시립묘지에 있던 선열 묘소 5기가 1955년 대구대 건립으로 인해 이곳 신암동의 국유지로 옮겨온 게 시작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묘소가 계속 늘면서
대구시가 관리 조례를 만들기도 했지만
1986년 묘지 철거와 아파트 건축이 결정돼
존폐 기로에 서기도 했습니다.

박동욱 /전 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장(95세)
"(당시 광복회원들이 대구시를 항의방문해) 다른 일반 묘지는 이장을 하지만 선열 묘지는 갈 데가 없다. 일정시대에도 왜놈들에게 쫓겨다녔다, 살아있을 때...죽어서 조국에 돌아왔는데도 또 쫓겨다녀야 되느냐(라고 호소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87년 성역화가 시작됐고
지난해 5월엔 국립묘지로 승격했습니다.

온갖 항일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국립신암선열공원,
알고 보면 우리 곁에 있는 자랑스런 항일의 현장입니다. TBC 박철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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