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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기획-1] 임란의 승리, 항일로 잇다...경북 의병 300년 '재조명'
한현호 기자 사진
한현호 기자 (3h@tbc.co.kr)
2025년 08월 13일 21: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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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TBC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항일투쟁의 뿌리이자 독립운동의 첫 불꽃이었던 경북 의병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경북은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의병들이 일어나 눈부신 전훈을 세웠고, 이들의 후손들은 3백년이 지나 다시 일본에 맞서 의병의 혼을 불태웠습니다.

잊혀진 의병 영웅들의 활약과 희생정신을 한현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임진년, 1592년 4월 부산 동래를 짓밟은 왜군은 거침없이 경북으로 북상합니다.

상륙 7일만에 경주를 점령했고, 이틀 뒤엔 왜군을 피해 영천군수가 달아난 영천성에 무혈입성합니다.

관군이 버린 성을 되찾은 건 의병이었습니다.

영천 출신 권응수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모집한 뒤 영천성에 주둔해 약탈을 일삼던 왜군을 격파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 승리 두 달 만에 거둔 첫 지상전 승리로, 임란 초기 조선의 반격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이었습니다.

[조원빈/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사 "그 당시 임진왜란에서 육군으로선 처음으로 전투에 승리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군들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생각의 전환점을 준 전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대의 평가는 이순신의 공적과 결을 같이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5년 "영천성 수복은 이순신의 공로와 다름이 없다."고 평가했고,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를 지낸 백사 이항복은 "영천성전투와 명량해전이 임진왜란에서 가장 장쾌한 전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영천성 전투를 이끈 의병장의 후손들은 3백년이 지나 다시 의병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경북 동해안과 동남쪽을 중심으로 창의한 '산남의진'.

이 산남의진을 이끈 의병장은 구한말 의병운동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정환직, 정용기 부자로,

임진왜란 당시 권응수와 함께 영천성 전투를 이끈 공신인 정세아, 정대임 의병장의 직계 후손입니다.

왜군과의 전투 끝에 전사한 정대임 의병장에 이어 산남의진을 이끈 정씨 부자들도 순국하면서 목숨을 바쳐 충절을 지켰습니다.

[지봉 스님/영천 역사박물관장 "(임란의병의) 정신들이 이어져서 구한말 산남의진이라고 하는, 일제강점기를 극복하는 그 과정에서 또 많은 의병들이 탄생됐고 산남의진은 또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랜 기간 아마 항일 무장 투쟁으로서는 가장 오랜 기간 그 투쟁을 하게 됩니다."

국권 침탈에 맞선 단순 무장 저항을 넘어, 가문과 지역 공동체의 정신으로 이어진 경북 의병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되새겨야 할 가치있는 유산입니다.

TBC 한현홉니다. (영상취재 김영상, CG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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