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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에 만난 '대구 사람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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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범 기자 (run2u@tbc.co.kr)
2025년 05월 19일 07: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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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의 치열했던 삶을 조명하기 위한 뜻깊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마침 어제(18일)는 121년 전 시인이 태어났던 날이기도 합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구 사람' 이육사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권준범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가 처음으로 마주한 대구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일제 식민 통치의 거점 대구경찰서와 조선식산은행, 헌병대가 줄지어 들어선 낯선 풍경.

일본인과 한데 뒤섞여 누가 이땅의 주인인지도 몰랐던 때 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1년 7개월 간의 억울한 옥살이, 수형번호 '264'를 필명으로 삼은 것도 이때 부터였습니다.

고조된 항일 감정은 1930년 경오년 말의 해에 발표한 첫 시에서 날카롭게 번뜩였습니다.

흐트러진 갈기와 후즐근한 눈, 채찍에 지친 말을 조선의 모습에 빗대 구름을 헤치고 소리치자는 내용입니다.

자신을 '대구 이육사'로 소개하며, 용기있는 자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했는가 하면 약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기사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대구근대역사관이 마련한 '백마 타고 온 초인, 대구 이육사' 특별전에는 글로써 일제에 항거했던 천재 시인의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신형석/대구근대역사관장 "저항 의식이 표출된 곳도 대구이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곳도 대구였기 때문에 이육사 선생의 40년 생애 중에 대구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학교수가 사재를 털어 만든 작은 문학관은 결국 문을 닫았고, 육사와 가족들이 살았던 곳은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주상복합아파트 한쪽에 만들어놓은 기념관은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이 또다시 잊혀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옥비/이육사 시인 따님(2023년 11월 개관 당시) "(공간이)작아도 굉장히 알차게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많은 학생들이 육사기념관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알알이 맺힌 청포도를 꿈꿨던 시인, 그의 시처럼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면 이제는 대구가 두팔 벌려 껴안아야 합니다.
TBC 권준범입니다. (영상취재 강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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