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회 방송된 <쇠죽과 청소깝> 시를 쓴 김옥행님의 둘째 아들

  • 권기석
  • 0
  • 1,473
  • 글주소 복사
  • 2016-12-11 08:35
농촌 탐방 전국 최고의 효도 프로그램인 <TBC 싱싱! 고향별곡>이 조용하고 포근한 우리 마을을 찾아 주신 것에 대해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꾸 - 벅)
424회(안동시 남선면 신석2리-2016.12.10) 방송 중 45분 15초 쯤에 우리 엄마(김옥행)가 <쇠죽과 청소깝>이라는 시를 읽는 대목이 나옵니다. 제가 바로 그 시를 직접 쓴 김옥행님의 둘째 아들입니다. 저의 나이는 올해 쉰 넷입니다. 사실 저는 전문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쓴 그 시<쇠죽과 청소깝>가 시의 형식이나 법칙에 맞는지도 잘 모릅니다. 수필같은 것은 더러 글쩍글쩍 해 봤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시를 제대로 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마치 누에가 실을 토해 내듯이 그냥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대로 썼다고나 할까요? 4년전 쯤에 직장 회식을 마치고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리 집으로 오다가, 하늘을 문뜩 처다봤는데 왠지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가슴도 멍먹해지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또 저의 향수병(鄕愁病)이 도진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 생각, 고향 생각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가자 저는 그냥 양복과 구두를 신은 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눈물이 조금이라도 빨리 마를 것 같았습니다. 겨우 집으로 와서 서재에 들어가 문을 잡궜지요. 그런데 가슴은 답답한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한참 멍 ~  때리다가 불현듯 청소깝 태우며 쇠죽 끊이던 어릴 시절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빈 용지에다 뭔가 쓰기 시작했죠. 한줄 쓰고 눈물 한번 훔치고(주책맞게 시리) 또 한줄 쓰고 콧물 한번 훔치고(챙피하게 시리) 그러기를 수십번 수백번을 반복하면서 겨우 새벽이 되어서야 완성을 했는데 그 시가 바로 <쇠죽과 청소깝>이랍니다. 이를테면 <눈물이라는 씨줄>과 <콧물이라는 날줄>로 투박한 안동포 한필을 밤새 짠 아낙네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마지막 부분의 한줄을 쓰고 난 뒤에는 혼자서 통곡을 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눈물로 쓴 이 시를 쓴 그해(2013) 겨울에 상노인(上老人)이며 요양원에서 투병을 하시던 아버지는 결국 우리 5남매의 애절한 눈물 배웅을 받으시며 천국으로 먼길을 떠나셨지요. 그런데 참 신기하네요. 그 시골 구석방에 고이 걸려있던 <쇠죽과 청소깝> 액자가 이렇게 <TBC 싱싱! 고향 별곡>을 통해 일부지만 전국 방송을 탈 줄이야 !!!  아, 참. 우리 와이프의 전언에 의하면 촬영하던 날(2016.11.29) 우리 엄마가 <쇠죽과 청소깝>시를 읽어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작가님>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 스텝들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글을 듣고 뭔가 감정과 진심이 통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감사했습니다.
  본 방송(2016.12.10)에서는 저의 시<쇠죽과 청소깝>가 중간 부분까지만 나온 관계로 외람되지만 시청자들의 이해와 감동을 좀더 함께 나누기 위해 <쇠죽과 청소깝>시의 원문 전체를 붙임파일(화면 윗쪽-Download #1 : 소죽과 청소깝1.jpg)에 올리고자 합니다. 시의 내용 중에 우리 동네 고유 지명(덤산, 가단, 못골, 선어대)와 안동 사투리(청소깝 - 소나무 생가지, 소죽 곡꾸랭이 - 소여물을 통에 퍼 담을 때 쓰이는 기억자 모양으로 된 도구, 상노인-연세가 아주 많으신 어르신)가 있는 점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TBC 싱싱!! 고향별곡>담당자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을 어르신들과 우리 어무이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주신 <멋진 싸나이 기웅아재>와 <천사같이 예쁜 담비 공주님>께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기냥 아낌없이 보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