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부각

  •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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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6 16:31
엄마와 새벽에 팔달시장에 다녀왔어요.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쯤이면, 고추를 한가득 삽니다.겨울내내 반찬으로 먹을 고추부각을 준비하거든요. 고추를 깨끗이 닦아서, 반으로 자른 다음에, 찹쌀가루에 묻히고, 찜그릇에 찌는 과정을 거칩니다. 전기장판에 깨끗한 비닐을 깔고, 찐 고추를 가지런히 놓고, 선풍기까지 동원해서 며칠을 말려야 합니다. 고추부각 준비 과정은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하는 우리집 연례 행사입니다. 작년에는 아빠가 많이 편찮으셔서 만들 겨를이 없었습니다. 엄마도 연세가 드셔서 그만두시라 해도 안 하면 서운하다면서 올해는 일을 벌이셨습니다. 엄마와 한창 고추를 가르고 있는데, 이모가 왔습니다. 엄마 아빠 꿈을 꾸어서 들려보셨다고 합니다. ”꿈에서 언니는 앉아서 일을 하고 있고, 형부는 서서 물끄러미 언니를 쳐다보고 있더라. 내 몸이 아파서 연락도 못하고 지냈는데, 안부도 살필 겸 한번 들러봤다“고 하십니다. 이모 말씀이, ”너희 아빠가 엄마 도와주라고 내 꿈에 나타났나보다“라고 하시네요. 올해 우리 곁을 떠나신 아빠는 제 꿈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셨는데, 이모 꿈에 나타나셔서 엄마를 도와주십니다. 숨을 거두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엄마 걱정을 놓지 못하셨는데, 돌아가시고도 엄마를 안타까워하시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빠가 유난히 좋아하시는 고추부각, 들깨송이부각을 엄마는 열심히 만드셨는데, 아빠와 같이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처럼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유난히 아빠가 더 생각이 납니다. 아빠! 보고 싶어요.

이무진-신호등
권인하-사랑이 사랑을
존박-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