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래를 다 불렀을때는 박수도 쳐 줬답니다.

  • 이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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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29 11:17
태영형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봄이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무뚝뚝한 성격탓에, 그리고 형제들틈에 자란 탓에 마음을 표현하는게 익숙하지 않았죠.

그런 저에게 어느날 그녀가 딱지로 접은 종이쪽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거기에 적혀있는 그녀의 글씨는 반듯하니 이뻤습니다.

\"제목 : 사랑하는 경일오빠와 하고 싶은 일\" 이라는 글자와 함께 10가지의 항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항목에는 유람선타기, 놀이동산가서 신나게 놀기, 수영장 가기, 조조영화보기등등 저와 꼭 했음 하는 일들이 씌여 있더라구요.

그리고 제 눈에 제일 띄는 한줄이 있었는데, \'노래방가서 멋지게 노래불러주기\'가 있었죠.

만나면 뭘하자고 해야 하나 나름 고민이였던 저에게 그녀의 쪽지는 너무 반가웠지만, \"노래방가서 멋지게 노래불러주기\"가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노래는 불러줄 수 있는데, 멋지게가 힘들것같았거든요.

태영형님, 저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거든요.

노래방에 갈 날짜를 정해놓고, 저는 고민을 하다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을 선곡하고 밤마다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방문을 닫아놓고 노래를 불러지만 방밖으로 새어나가는 저의 노래소리를 듣고는 부모님께서도 \"무슨 일있냐?\" 물으셨고, \"그냥, 그냥\" 그러면서도 괜시리 웃으시는 부모님표정에 민망해서 밤늦게 놀이터에 나가서 연습도 해보고 저혼자 노래방에 가서도 아름다운 구속만 30분가량 연습했답니다.

그리고 노래방가기로 한 당일날, 그녀를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앞으로 나가 그녀를 바라보고 아름다운 구속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도 여리게 떨리기 시작했구요.

제 마음을 전하는 심정으로 정성스레 불렀습니다.

그런데 \"처음이야 내가 드디어 내가 사랑에 난 빠져버렸어 혼자인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다른 내가 온거야\"라는 부분을 부르는데 목소리가 갈라지더니 삑사리가 났지요.

물론, 고음이라 얼굴도 빨개졌구요.

그러나 그녀는 흐뭇하게 저를 보고 있었고 그 모습은 충분히 행복해하는것 같았습니다.

제가 노래를 다 불렀을때는 박수도 쳐 줬답니다.

태영형님, 저와 그때의 그녀, 지금의 나의 아내는 서로에게 아름다운 구속을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신청곡은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