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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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6 14:34
싱싱 고향별곡 신청합니다.

수신 : 박지현, 이진아 작가님
발신 : 영천시 공보계장 설동석
매수 : 표지 포함 6쪽

       안녕하십니까?
       일전에 전화드린 설동석입니다.
       지금까지 약 16회나 방영되어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싱싱 고향별곡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를
       싱싱 고향별곡 신청하오니 배려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영천시청 문화공보관광과 공보계장 설동석
   직통전화 : 054) 330-6061
   휴 대 폰 : 010-8720-3970
   팩    스 : 054) 330-6069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 현황
○ 가구수 : 55세대
○ 인구수 : 114명
○ 대표자
  - 용  산  이  장 (이현준) : 010-3500-1423
  - 새마을  지도자 (손태식) : 011- 809-8068
  - 새마을부녀회장 (최순임) : 010-9907-7255


□ 용산리 지명유래
본래 영천군 자양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원동, 월연동, 인구동을 병합하여 이곳에 있는 기룡산의 이름을 따서 용산동이라 함.
원래 용산 1, 2, 3동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영천댐이 조성되면서 수몰되고 남은 마을을 용산리라 하고 있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로 개편되었다.

○ 이경은 선생 부조묘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53호 (74.12.10)
-소 재 지 :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번지
-시    대 : 조선숙종 396
-소 유 자 : 벽진이씨 경은파종중 이종옥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사람인 경은 이맹전(李孟專)을 추모하여 조선 정조 10년(1786)에 어명(御命)으로 건립한 것이라 하는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 이경은 선생 제단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54호 (74.12.10)
-시    대 : 조선 숙종396 (1713)
-소 재 지 :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번지
-소 유 자 : 벽진이씨경은파종중 이종옥
세종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사람인 경은 이맹전 선생을 제향하기 위하여 숙종 39년(1713)에 어명에 의하여 후손 이유룡(李猶龍), 이승룡(李升龍) 등이 건립한 것으로 화강암 석대위에 정면 5칸 측면 1칸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 용계서원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55호 (74.12.10)
-소 재 지 :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번지
-시    대 : 조선 정조6년(1782)
-형    식 : 정면4,측면3,팔작지붕
-소 유 자 : 벽진이씨 경은파종 중 이종옥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경은 이맹전 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정조 6년(1782) 왕명으로 토곡동에 건립된 것이다. 경은 이맹전 선생은 세종 9년(1427) 친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정자를 거쳐 정언(正言), 거창현감을 역임하였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사퇴하고 선산에 내려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건물은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7월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하여 현 위치로 옮겨졌다. 익공계(翼工系)형식으로 건축된 누각식(樓閣式)의 팔작지붕이다.
이맹전(李孟專 1393~1481) : 호는 경은(耕隱) 본관은 벽진(碧珍) 자헌대부 병조판서 이심지 (李審之)의 아들로 선산 구미 현곡에서 태어났다.
야은 길재(吉再)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벼슬에 올랐다. 계묘정란 후 공은 국정에 뜻이 없어 외직으로 거창현감에 부임했다.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 한다는 춘추의리(春秋義理)를 굳게 지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거짓 봉사, 거짓 귀머거리가 되어 27년간이나 긴 세월동안 오직 단종만 생각하고 외인과의 접촉을 끊고 89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 용산리 고인돌 떼
   영천댐 수몰지구 내인 영천시 자양면 용산동 산 72번지, 자양천의 선상지(扇狀地)에 있다. 용산마을 북단에 설치되었던 상수도의 저수탑을 기점으로 남쪽의 뽕밭에 2기[1·2호], 저수탑 앞을 지나는 도로 건너편 도로변에 3기[3·4·6호], 저수탑과 접해서 1기[5호], 저수탑의 동쪽으로 약 70m 떨어져 1기[7호]가 있었다.

○ 용산리 동제
   동제(洞祭)는 마을 공동체의 풍작을 기원하면서 주민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민간 신앙으로서 동제는 크게 유교식과 무속식이 있는데, 영천 지역의 동제는 대부분 유교식에 해당한다. 이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유교적인 이념이 민간에까지 뿌리를 내려 정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서는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굿[당굿]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무속식 동제에서 유교식 동제로 변화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용산리 동제는 호환이나 호랑이로 인한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 당굿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용산리 동제 신목(神木)은 원각마을 입구에 있는 귀목나무[느티나무]이다.
   용산리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 6시에 귀목나무에서 지내는데, 용산리에서는 동제를 ‘당제’라고 부른다. ‘당제’를 주관할 제주[제관]는 전해에 동제를 지내고 나서 음복하면서 미리 선정해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주는 젊은 남자를 중심으로 해서 1명으로 선정하는데, 임기는 2년으로 정해 두고 있다.

   제수(祭需)는 주로 돼지머리·과일·포·떡을 진설하고, 간단하게 술을 한 잔 올린다. 제수 장만에 소요되는 경비는 ‘당제’를 위한 별도 기금에서 충당한다.
   용산리 동제는 정월 대보름 아침 6시경에 신목(神木)인 귀목나무에서 지냈다. 20여 년 전에는 ‘당제’를 지내면서 ‘당굿’도 크게 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간소하게 유교식으로만 지내고 있다. 영천 지역에서는 ‘당굿’을 했다고 전해지는 마을도 거의 없는데, 그러한 점에서 용산리 동제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용산리에서는 동제를 지낸 후 이장이 음복하러 오라는 방송을 하면, 주민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