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새댁입니당~ 남편에게 한국의 고택을 보여주고 싶어요.
-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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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07 12:53
안녕하세요. 남아공계 영국인과 결혼해서 대구에 사는 다문화 새댁이예요~ ^^
이제 결혼 만 1년차, 뱃속에 아빠를 꼭 닮은 아들도 있고, 매일매일이 행복하면서도 전쟁 같은 신혼을 보내고 있답니다.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는 말을 신혼 1년 동안 한창 실감을 하다가, 또 이 사람 아니면 나를 누가 데리고 살겠나 하는 마음에 반성도 해 보다가, 또 어느 순간은 말도 못하게 행복하다가, 다시는 보기 싫을 정도로 밉다가. 그렇게 살고 있네요.
자다보면 침대 끝과 끝에 서로 남처럼 자게 되는데도, 그래도 잠들기 전에 꼭 손이든 발이든 잡고 잠들때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집에 언제오냐고 물어보면 기분이 좋고, 자기 두고 어디 간다고 입을 삐죽이는 모습을 보면, 이래서 신혼인가보다...해요.
지난 달, 첫번째 결혼기념일도 잊고 둘다 헉-했더랬지요. 결혼기념일 당일 영국에 계신 시어머니가 \"결혼기념일 축하해~ 1년동안 잘 살아줘서 고마워~\"하고 보내신 문자를 받아들고 둘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아차! 했었어요. ㅎㅎ 그러고 우리 결혼기념일은 내년에도 있을거니까~ 하면서도 내심, 아이 나오기 전 우리가 연인으로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념일이었던 것 같은데..라며 섭섭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고택음악회 소식을 듣고 냉큼 달려온거죠.
한국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았지만, 남편은 한옥에서 잠을 자거나 생활을 하는 등의 체험은 해 본적이 없다고 해요. 제가 한옥을 너무 좋아해서 같이 한옥마을에 갈 때면, 지붕의 곡선이나, 오래된 마루의 갈라진 틈, 반질반질해진 기둥들을 만지며 하염없이 남편에게 한옥에 대해 자랑을 하고 있노라면, 남편도 우리 나중에 한옥스타일의 집을 짓고 살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해요. 태어날 우리 아이도 반은 한국사람이니까, 태교로 한옥에서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하룻밤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나중에 우리 아들 태어나면 엄마 아빠 손잡고 다시 그 곳이 찾아가 엄마 아빠 뱃속에 있을 때 왔던 곳이야...하며 추억할 수 있겠죠? ^^
저희 신랑은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경상도 분이시네요..할 만큼 무뚝뚝해요. 말도 없고 웃음도 없어서 연애할땐 친구들이, 니 남자친구 이빨 있냐고 물을 정도였답니다. ㅋㅋ 그런 남편에게서 연애하면서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처음 봤을 때가, 영국에서 저희 결혼식 올릴 때, 목사님이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합니다\" 할때 였어요.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웃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사람은 나의 남편이 되어서 정말 행복하구나. 평생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더랬습니다. 그 덩치 큰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My wife\"라고 하는 모습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며칠 전 결혼식 사진을 꺼내보며, 그 웃음을 보고 다시 한 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우리 결혼식 처럼, 아이가 나와도, 이 세상 어디에 가서 살아도, 추억하며 우리 세 식구 처음 함께 한 여행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고택에서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