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연애를 못하는 종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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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3-30 14:07

세상에 연애를 못하는 종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저처럼 말이죠.

전 한 번도 연애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서로 좋아하던 같은 반 남자애랑 사귈 수도 있었는데, 아 글쎄 이놈이 사귀는 것 보다는 지금처럼 서로 좋아하는 감정만 확인하고 이대로 지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도 서로 간섭받지 않는 그런 상태가 좋았지만 금세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습니다. 사귀는 것이 아니면 지금 같은 어정쩡한 상태는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래도 좋아하는 감정은 남아서 연락을 지속하게 되었고, 하루는 데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지만. 서로 좋아하면서 꼴에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지 서로 시간 없는 척 해댔습니다. 저는 과외가 있었고, 그 놈은 원래 늦게 활동한다면서 오후에 만나기로 했죠. 딱 영화만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 그때가 남자와 단 둘이 하는 첫 데이트였습니다. 그런데 둘 다 너무 서툴렀고, 어설펐고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만큼 생각하기 싫은 추억 중에 하나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라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처음 만나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어색했습니다. 같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에는 서로 할 말이 없어서 서먹했고, 시내에 가서는 마땅히 볼 영화가 없어서 헤매었고, 결국 고른 영화 한 편은 어설픈 공포영화였는데도 불구하고 전 엄청 추하게 깜짝 깜짝 놀래버렸죠. 옆에서 보면 아주 경기 수준이었을 겁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 아이 집을 지나치는 데도 들어가지 않고 계속 나와 같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괜찮으니 집에 가라고 계속 떠밀었는데도, 너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니라 만화책을 빌리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에 내리꽂는 마음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전 그만 썩소와 함께 실소를 터뜨리며 과외를 받으러 집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 놈은 만화책을 빌리러 갔습니다. 전 방금 전의 충격으로 고막에 얇은 코팅막이 되어서 과외 선생님의 설명이 자동 반사가 되더군요. 그 뒤로 전 그 아이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죠.
지금도 연애를 시작하기 전이면 항상 이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완벽한 시나리오가 잡히지 않으면 남자와의 약속도 꺼리고는 해요. 또다시 실패할까봐서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색하지 않은 척 나 혼자만 연기하는 것 같고, 나 혼자 분위기 띄우려고 하는 것 너무 상대방한테 지는 것 같아서요. 혼자 지내도 충분히 바쁜 시간에 어색하게 남자를 만나서 나 혼자 허우적거리는 것 너무 바보 같아서요. 그런데 지금은 연애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전 하나의 환상만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 곳으로 가기까지의 긴 과정이 있다는 것은 몰랐거든요. 지금은 사랑의 환상을 향해 같이 걸어갈 다정한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