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기>

  • 이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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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22 12:39
어제 저녁 비오는 운전길, 퇴근길에 우연히 매직? 뮤직!을 듣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 입니다.

저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제가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같은 반은 한 적이 없어 얼굴과 이름정도만 알고 지내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생이 된 어느날 우리는 세이클럽이라는 채팅사이트에서
우연히 만났고 저는 정체를 숨긴채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맞추면서 서로 친해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약 3년간 저희는 채팅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메일펜팔을 시작했죠.

중학생이 된 저는 한창 많이 먹고 뚱뚱해졌고 그 아이와 메일을 수도 없이
주고받았지만, 외모에 자신이 없고 부끄러운 마음에 지나가다 만나도 모른척하고
서로 안다고도 말하지 않는 비밀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메일에선
오늘 지나가면서 너 봤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죠.
중학교 3년 내내, 사춘기 그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시기. 내 얘기를 온전하게 하고
그런 내 얘기를 귀 기울여주는 그 아이와의 메일을 통해 저의 생각이 많이 자랐던거 같아요.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불안한 시기를 따뜻하게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 때도 몰랐습니다. 우리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지.

고등학생이 되면서 메일은 점차 뜸해졌고, 그 아이는 저에게 용기내어 고백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존감이 낮았던 저는 빛나는 그 아이를 부담스러워했고, 딱 100일만에 헤어짐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오가다 마주친적은 많았지만
각자의 이성친구가 있었기에 가볍게 인사정도만 하고 지나쳤어요.

각자의 삶을 살며 10년을 보낸 후,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저는 직장1년차 교육을 다녀오는 길이였고, 그 아이는 어학연수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운명처럼 다시 만났고, 또 운명처럼 각자의 곁에 아무도 없었고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반가운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반가움이
사랑으로 변해 4년을 교제했습니다.

처음엔 서로에 대한 반가움과 우리의 과거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4년간 매일매일의 추억이 쌓여 우리는 이제 미래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2016년 11월 12일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70년의 인생을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저는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20년전으로 돌아가 저에게 말하고 싶어요.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저 멋지고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가
너랑 결혼하게 될 남자라구요. 그리고 메일을 꼭 지우지말라구요...

사랑하는 지환아, 내 오래된 친구이자 애인이자 남편인 너.
이제 니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 조차 없어.
이제 우리 둘만의 추억이 아닌 우리 우주, 은하 이쁜 아이들과의 추억도 만들어 나가자. 사랑해.

결혼 준비하느라 바빠 크리스마스 계획을 못 세웠어요.ㅜ.ㅜ
남편이 열심히 표를 구하고 있긴 한데.. 결혼식 날 절 위해 멋진 축가를 불러준 남편을 위해
저도 남편이 좋아하는 공연 티켓을 꼭 구해주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